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가까운 바다나 한 번 보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는데, 당진이 이렇게 다양한 얼굴을 가진 곳인 줄은 몰랐습니다. 성지 순례길부터 수목원 산책, 바다 일몰까지 하루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여행지였습니다.
소나무 숲에서 시작한 하루, 솔뫼성지
서울에서 차로 두 시간이면 닿는 거리라 큰 기대 없이 출발했는데, 솔뫼성지에 발을 들인 순간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길게 이어진 소나무 숲길이 단순한 산책로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솔향이 짙게 퍼지는데, 도심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냄새였습니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생가터입니다. 이곳은 순교 성지(殉敎聖地)로 지정된 장소인데, 순교 성지란 종교적 신념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이들을 기리기 위해 보존된 역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종교가 없는 저도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숙연해졌습니다.
성지 내에는 묵주정원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순례길이란 신앙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묵상하도록 만들어진 도보 코스를 뜻합니다. 실제로 걸어보면 경사가 거의 없고 길이 완만해서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길을 걸으면서 그간 쌓인 복잡한 생각들을 조용히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 여행을 왔는데도 외롭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분위기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되었습니다(출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성이란 가톨릭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성인으로 선포하는 절차를 의미합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걸으니 숲길 하나하나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당진 솔뫼성지에서 챙겨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소나무 숲길과 묵주정원 순례길은 걷기 코스로 운동화 필수
- 종교와 무관하게 사색과 힐링 목적으로 방문하는 분들도 많음
- 주차장이 넓어 차량 이용이 편리하며 입장료 없음
- 근처에 삽교호 놀이동산, 아마존 아쿠아 파크가 있어 가족 단위 연계 코스로도 적합
사계절 풍경이 바뀌는 삼선산수목원
솔뫼성지에서 차로 이동해 들린 삼선산수목원은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산책로가 완만하게 이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든 천천히 둘러보기 좋았고, 중간중간 쉼터가 있어 딱히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주말에 방문했더니 가족 단위 방문객이 꽤 많았습니다. 피크닉존에는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즐기는 가족들이 곳곳에 보였는데, 딸아이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다음에는 꼭 같이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삼선산수목원은 식물 자원의 보존과 교육을 목적으로 조성된 수목원으로, 수목원(樹木園)이란 다양한 수종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며 생태 교육과 여가 공간으로 활용하는 시설을 의미합니다. 이곳은 사계절마다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 봄에는 꽃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드는 식으로 같은 공간이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수목원 끝 쪽에 위치한 암석원 부근에는 출렁다리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좀 겁이 났는데, 용기를 내어 건너고 나니 그것도 나름 스릴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겁쟁이 같지만 다리 중간에서 한 번 멈춰서 아래를 내려다보다 급히 눈을 감은 기억이 납니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 수목원은 산림 생태계 보전과 국민 정서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출처: 산림청).
왜목마을에서 회 한 점, 서해 일몰 한 잔
삼선산수목원을 나와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도착한 곳이 왜목마을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와보니, 이 마을이 그렇게 유명한 이유를 단번에 알겠더군요. 서해안임에도 불구하고 지형 구조상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장소입니다.
왜목마을이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이유는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 때문입니다. 리아스식 해안이란 육지가 바다 쪽으로 길게 돌출된 반도형 지형으로,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동쪽과 서쪽 수평선이 모두 보이는 구조를 가집니다. 덕분에 이른 아침에는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저녁에는 붉게 물드는 노을을 같은 해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해변에서 조금 걸어가면 왜목항이 나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낚시꾼들이 석문방조제 일대에 꽤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낚시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여기가 정말 딱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날 좌대 횟집에서 저녁을 먹으려다 영업을 하지 않아 근처 횟집 단지에서 광어회를 포장해 왔습니다. 수산시장이나 회 센터를 혼자 가본 적이 없어서 솔직히 좀 긴장했는데, 사장님이 오히려 먼저 눈을 마주치며 편하게 대해 주셔서 금방 안심이 됐습니다. 2만 원어치를 달라고 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넉넉하게 주셨고, 쌈 채소와 소스도 같이 챙겨 주셨습니다.
왜목마을 선착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돗자리 하나 없이 그냥 차 안에서 먹었습니다. 광어회에 쌈장이랑 마늘 얹어 상추에 싸 먹는데, 옆에서 캠핑족이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와 잠깐 외롭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도록 그 자리를 떠나기 싫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완벽한 준비가 없어도 바다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한 여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진은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거리와 볼거리 면에서 꽤 균형이 잡힌 여행지입니다. 가족과 함께라면 삼선산수목원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왜목마을에서 저녁노을을 보는 코스가 무난합니다. 혼자라면 솔뫼성지 순례길을 걸으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올 이유가 됩니다. 바다가 보고 싶은데 멀리 가기는 부담스럽다면, 당진으로 핸들을 돌려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