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바다 근처에 정자 하나 있겠거니 싶어서 갔는데, 막상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놨습니다. 속초 영금정은 파도 소리가 거문고처럼 들린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명항과 속초등대 사이 넓은 암반 지역 전체를 일컫는 곳입니다. 충동적으로 떠난 아침 여행이었는데, 결국 마음에 오래 남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영금정의 암반지형과 역사 유래: 사라진 바위산 이야기
제가 처음 영금정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여기가 그냥 해안 산책로 아닌가?"였습니다. 넓게 펼쳐진 암반(巖盤) 위를 걸으며 특별함을 잘 못 느꼈는데, 이 장소의 역사를 알고 나서 보는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영금정은 원래 사방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산이었습니다. 기암괴석(奇巖怪石)이란 기이하고 특이한 형상의 바위를 뜻하는데, 이 바위산 절벽에는 그런 기암괴석이 정자 모양으로 솟아 있었고, 꼭대기에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이름의 유래도 흥미롭습니다. 파도가 바위산과 부딪치며 마치 거문고를 연주하는 듯한 신비로운 소리를 냈다 해서 '영금정(靈琴亭)'이라 불렸습니다. 여기서 영금(靈琴)이란 신령스러운 거문고라는 뜻으로, 단순한 파도 소리를 넘어선 자연의 음악적 현상을 표현한 이름입니다.
영금정의 또 다른 이름은 비선대(飛仙臺)입니다. 비선대란 신선이 날아다니는 곳이라는 의미로, 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전설이 얽혀 있는 이름입니다. 이 두 이름만 봐도 이 장소가 얼마나 신비로운 경관을 가졌었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웅장했던 바위산을 볼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 속초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영금정 바위산 전체를 채석(採石)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채석이란 건축이나 토목 공사에 쓸 돌을 바위산에서 캐내는 작업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절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역사적 경관 훼손 사례로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속초시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영금정 일대를 문화관광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암반 해안 지형과 주변 풍경의 보전 가치가 지속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출처: 속초시 문화관광).
제가 직접 걸어보니 지금 남아 있는 넓은 암반 지대만으로도 충분히 장관이었는데, 원래의 바위산이 있었다면 얼마나 대단한 경치였을까 상상이 잘 안 될 정도였습니다.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오히려 지금 남아 있는 풍경을 더 소중하게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영금정에서 알아두면 좋은 역사·지형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영금정은 특정 건물이나 정자가 아니라 동명항~속초등대 사이 넓은 암반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지명입니다.
- 바위산 절벽의 기암괴석이 정자 형태였고, 파도 소리가 거문고처럼 들려 '영금정'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 일제강점기 항만 건설을 위한 채석으로 원래의 바위산은 현재 존재하지 않습니다.
- 비선대라는 별칭도 함께 사용되며, 선녀 전설과 연결된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해돋이정자에서 본 동해 풍경: 제가 직접 경험한 뷰
제가 방문한 날은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충동적으로 출발한 속초 여행이었는데, 어디가 가장 탁 트인 바다를 볼 수 있을까 찾다가 영금정에 닿았습니다. 주차는 동명항 주차장에 처음 들어갔다가 유료라는 걸 확인하고, 근처 속초등대 주차장이 무료라는 정보를 빠르게 찾아 이동했습니다. 조금 걸어야 하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영금정에는 두 개의 전망 포인트가 있습니다. 언덕 위의 정자 전망대와 암반 끝에 세워진 해돋이정자입니다. 저는 먼저 정자 전망대부터 올랐는데, 계단이 데크(deck) 구조로 되어 있어 오르기가 수월했습니다. 데크란 목재나 합성 소재로 만든 야외 보행로를 말하는데, 경사지나 해안 지형에서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구조물입니다. 올라가자마자 눈앞에 동해 바다가 펼쳐지는데, 그 순간 제가 찾던 게 바로 이거였구나 싶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원함이었습니다.
정자 전망대에서 내려와 해돋이정자 쪽으로 걸어가는 길도 기억에 남습니다. 양옆으로 바다가 보이는 암반 통행로를 걸으면서, 멀리 정자가 보이는 구도가 그 자체로 사진이 됐습니다. 바람이 꽤 세게 불어서 머리 모양 잡은 예쁜 사진은 포기해야 했지만, 풍경 자체는 눈에 마음껏 담아왔습니다.
해돋이정자는 일출(日出) 감상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일출이란 태양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현상을 말하는데, 동해안은 서해안과 달리 수평선에서 직접 태양이 올라오는 장면을 볼 수 있어 일출 명소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속초 영금정은 동해안 대표 일출 명소 중 하나로 꾸준히 소개되고 있으며, 연간 방문객이 상당수에 달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시선을 돌리면 설악산의 능선도 보이고, 동명항의 정겨운 항구 풍경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몰랐는데 주변에 가마우지 같은 바닷새들도 암반 위에 앉아 있어서 생각보다 볼거리가 풍부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영금정이 그냥 바닷가 산책 코스 정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실제로 가보니 뷰의 밀도가 달랐습니다. 같은 속초 바다라도 높이 차이와 시선 방향이 만들어내는 개방감이 다른 해변과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짧은 시간에 전망대와 해안 암반, 항구 뷰까지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이 높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영금정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곳이 되었습니다. 높은 곳에서 탁 트인 바다를 내려다보는 그 순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은 가슴속에 쌓인 것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근처에 속초등대전망대와 동명항 먹거리도 함께 둘러보면 반나절 코스로 충분히 알찹니다. 저는 다음에는 일몰 시간에 맞춰 다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노을이 질 때 해돋이정자에서 보이는 풍경이 어떨지, 이미 머릿속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